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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1 15:06 (화)
[김세곤의 역사칼럼]헤이그 특사 사건(26)
[김세곤의 역사칼럼]헤이그 특사 사건(26)
  •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nexus386@
  • 승인 2021.04.16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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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위종 특사의 연설, 한국을 위한 호소(A Plea for Korea)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907년 7월8일 저녁에 헤이그 특사 이위종이 헤이그 국제협회에서 연설한 ‘한국을 위한 호소(A Plea for Korea)’를 계속 살펴보자.

“구(舊)정권(고종 정권)의 부패, 수탈과 학정(虐政)에 지쳐 있던 우리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을 기대와 희망으로 맞이하였습니다.

당시에 우리들은 일본이 부패한 관리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만민에게는 정의를 구현하며, 행정 당국에게는 솔직한 조언을 해주리라 믿었습니다. 우리는 일본이 이 기회를 활용해 한국인에게 필요한 개혁을 잘 이끌어 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자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놀랍게도 야만적이고 이기적인 본성을 드러냈습니다.

일본이 제일 먼저 요구한 것은 이른바 ‘황무지(荒蕪地) 개척권’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개간되지 않은 전국의 많은 땅을 황무지라 하여 50년간 일본인에게 무상 대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그 땅들을 자기들이 비용을 들여 경제가치가 있는 땅으로 바꾸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제안이 너그럽고 합리적인 제안으로 들리십니까? 그들이 황무지라고 주장하는 땅은 우리가 잠시 사용하지 않는 땅일 뿐이지 버려진 땅이 아닙니다. 일본은 겉으로는 우리를 돕기 위한 제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땅의 절반 이상을 공짜로 삼키겠다는 야욕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이러한 계략은 우리 국민의 거국적인 반대에 부딪쳐 실행에 옮기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우리 국민들 사이에는 일본에 대한 반발 심리가 크게 일었습니다.”(이승우 지음,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 김영사, 2019, p 158-159)

그랬다. 1904년 4월에 일본은 궁중과 정부를 막론하고 외국인과 계약을 체결할 때는 미리 일본의 동의를 구하도록 요구했다. 5월에는 전라도·경상도·강원도 연해 어업권에 이어 전쟁 중인 일본군에 신선한 생선을 공급한다는 명목으로 평안도·황해도·충청도 3도 연해 어업권 등 각종 이권마저 요구했다.

러일전쟁의 전황이 일본에 유리하게 진행된 6월에는 일본인 나가모리 도키치로(長森藤吉郞)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가 알려져 큰 파문이 일었다. 일본 대장성 관리였던 나가모리가 일본 대장성의 위촉으로 1903년 12월에 대한제국에 와서 경제·금융 사정 등을 살피고 대한제국을 경영할 방법을 구상한 결과 나온 것이 ‘황무지 개척권 요구’였다.

이 요구는 일본인의 식민을 목적으로 다수의 일본인 농민을 한국에 이주시키고, 아울러 한국의 농지를 개방시켜 원료 및 식량 공급기지로 삼으려는 데 있었다.

나가모리는 한일의정서 체결 직후인 1904년 3월16일 「대한제국 내 토지의 개간·정리 및 소주, 연초, 백삼, 식염, 석유 등의 제조·수입 전매특허에 관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궁내부대신 민병석과 교섭을 진행했다.

6월6일에 일본공사 하야시는 외부(外部)에 50년 동안 전국 황무지의 개척권을 위임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황무지의 개간·정리·척식(拓植) 등 모든 경영권과 그곳에서 얻어지는 모든 권리를 광범위하게 포함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일제의 무모한 요구에 국민의 여론은 들끓었다. 울분에 차 있던 국민들은 전 국토의 3할에 해당하는 황무지를 한 푼의 대가도 없이 강탈하려는 일제의 만행을 묵과하지 않았다. 유생 및 전직·현직 대신들이 반대 상소를 연거푸 올렸고,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 등의 언론에서도 논설과 기사로 일제히 일본을 규탄하였다. 게다가 전 중추원 의관 송수만, 심상진은 보안회(保安會)를 조직하고 구국민중운동(救國民衆運動)을 더욱 확대, 발전시켜나갔다. 이러자 대한제국 정부는 6월29일자로 계약을 인준할 수 없다고 일본 측에 통고했고, 일본은 8월10일에 계획을 중단하였다.(서영희 지음, 일제 침략과 대한제국의 종말, 역사비평사, 2012. p 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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