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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7 13:05 (월)
[김세곤의 역사칼럼]헤이그 특사 사건(25)
[김세곤의 역사칼럼]헤이그 특사 사건(25)
  •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nexus386@
  • 승인 2021.04.13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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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904년 9월2일에 의정부 참정(국무총리) 신기선은 상소를 계속한다.

“지금 폐하께서는 대궐 안의 깊은 곳에 가만히 앉아있고 여러 신하들이 폐하를 만나 뵙는 일이 드뭅니다. 군대와 나라의 이해와 흥망에 관련되는 큰일도 가까이 하는 한두 사람과 의논을 하고 갑자기 결정하기 때문에 부(部)와 부(府)의 대관(大官)들은 까마득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비준 인장을 찍은 칙서를 내시가 전달해 주어야 깜짝 놀라 서로 돌아보며 문서의 끝에다 서명합니다. (중략)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날마다 부(部)와 부(府)의 대신들을 편전(便殿)으로 불러들여 그들로 하여금 공사(公事)를 면전에서 문의하게 하여 결재를 받고 그 자리에서 그들과 가부를 토론하도록 하소서.

이를 날마다 시행한다면 공론과 물정이 저절로 모두 폐하의 감식안에 밝혀지고 큰 원칙과 주요 사항들이 차례차례 거행되어 문란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옳고 그름의 잘잘못을 서로 숨김없이 논하고 중문을 활짝 열어 높은 관리들을 들어오게 한다면 비록 그 사이에 소인이 참여하더라도 간사한 짓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첨을 하고 못된 짓을 하는 간교한 무리들과 점쟁이 따위의 천한 무리들이 어떻게 대신들과 정사를 같이 논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비록 폐하께서 곁에서 맴도는 소인들을 가까이하고 뇌물을 바치게 하려고 한들 그 일을 즐겨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대궐을 엄숙하고 깨끗하게 만들려면 반드시 경연을 다시 열고 모든 정사를 직접 처결하여야 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신의 벼슬을 체차(遞差)하고 신의 말을 받아들이시어 날마다 경연에 나가고 대궐을 엄숙하고 깨끗하게 만들고 뇌물을 근절하소서.”

이러자 고종은 사직을 반려하며 비답했다.

“말미에 진술한 것은 정사의 요점을 깊이 터득한 것으로서 매우 극진하다. 그러나 현재 시행하려면 역시 곤란한 점이 있으니 응당 잘 참작해서 돈독하게 도움을 줄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사직하겠다는 말을 거두고 즉시 일을 보도록 하라.”

신기선은 날마다 경연에 나가고 대궐을 엄숙하고 깨끗하게 만들고 뇌물을 근절하라고 간언했다. 하지만 고종은 현재 시행하려면 역시 곤란한 점이 응당 잘 참작해야 할 것이라고 비답하였다.

경연에 나가는 것과 대궐을 엄숙하게 하고 뇌물을 근절하는 일을 당장 시행하는데 무슨 곤란한 점이 있는가? 참으로 이해가 안 된다. 경연은 당장 시행하면 될 것이고, 무당과 점술가는 출입금지를 시키면 될 것 아닌가?

황현도 1905년에 ‘고종의 미신 현혹 실상’을 기록했다. 『매천야록』에 나온다.

“일본인들이 헌병을 파견하여 경운궁의 문을 수비하였다. 이때 요술(妖術)을 가지고 고종을 현혹시키는 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들은 혹 구름을 타고 허공을 날아 순식간에 만리 길을 가서 러시아군과 일본군의 진영(陳營)을 굽어본다고도 하고, 혹은 비와 돌을 마음대로 떨어뜨리게 하여, 만일 적들이 국경을 침범할 때는 비와 돌로 그들을 섬멸할 것이라고도 하였다.”

1904년 11월25일에 의정부 참정 신기선은 다시 사직 상소를 올렸다.

“신은 재주도 없으면서 외람되게 있지 말아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일을 일답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줄곧 녹봉만 축냈습니다.

신이 변변치 못하게 직무를 보아 오랜 폐단을 없애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지 못하였고 또 기강을 엄하게 세워 민심을 진정시키지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신 스스로가 초래한 것이니 어찌 저 백성들을 탓하겠습니까?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신으로 인해 근근이 연명하던 정부가 한 번 무너져 내린 뒤로 다시는 떨칠 수 없게 되었으니 신이 비록 뻔뻔하게 교묘한 말로 죄를 감추려고 한들 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폐하가 비록 곡진하게 생각하여 관대하게 용서하려고 한들 그 역시 될 일이겠습니까?

하물며 많은 재앙이 겹치고 심상치 않은 변고를 당한 때에 크게 개혁하고 크게 분발하지 않고서는 불길에 휩싸이고 물속에 빠진 것을 구출해서 소생시켜 낼 수 없는데, 지극히 어리석고 용렬하여 이미 일을 망쳐놓은 신이 구차하게 벼슬을 하고 있으니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미 지은 죄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간 상사(喪事)를 만나 감히 사임하는 글을 내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겨우 호소하며 폐하를 번거롭게 하니 속히 신의 참정(參政) 벼슬과 의정(議政)벼슬을 체차하고 신의 죄를 다스리어 모든 관리들을 각성시키소서.”

그러나 고종은 “번거롭게 굴지 말고 즉시 나와 정사를 보라.”고 사직을 다시 반려했다.(고종실록 1904년 11월25일 6번째 기사)

오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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