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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2 04:00 (수)
[김세곤의 역사 칼럼]외국인이 본 한말(32)
[김세곤의 역사 칼럼]외국인이 본 한말(32)
  •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nexus386@
  • 승인 2021.03.31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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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야 1903년 가을(7)-만성적인 병폐의 화신, 양반과 관리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세로체프스키의 저서 『코레야 1903년 가을』의 ‘19장 사회는 욕창 앓는 몸’을 계속 읽는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전적으로 정부의 신하이다. 지식인의 독립적 전문직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반정부 움직임이란 게 있다면 그것은 파(당파)가 다른 관리나 양반 등 사이에서 이권 다툼과 복수 때문에 생기는 싸움이거나, 아니면 고통에 견디다 못한 민중들의 단순하고도 즉흥적인 반응인 경우가 고작이다.

한국의 사회와 정치에서 만성적인 병폐의 화신은 바로 양반과 관리이다.

처음에는 양반만 존재했었고, 그들은 주로 도시나 성곽 안에 살면서 임금의 이름으로 그곳을 다스렸다. 양반이 문관 출신인 ‘동반’과 무관 출신인 ‘서반’으로 나뉜 것은 현 왕조가 자리를 잡은 16세기에 와서이다.

양반은 세습계층으로 원래는 적자(嫡子, 정실이 낳은 아들)만이 대를 이어 받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첩에게서 태어난 서자의 숫자가 점점 증가하게 되자, 그들은 강력한 세력을 형성해 적자와 똑같은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857년의 법령에 따라 적자와 서자의 차별은 사라졌다.

한편, 양반들은 유력한 가문으로 나뉘어 각자 자기 집안의 인물이 영향력있는 자리에 오르는데 전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 까닭으로 지난 세기에는 순조·헌종·철종 3대 왕조에 걸쳐 안동김씨 가문이 조선을 호령했고, 몇 년 전 살해당한 왕비(1895년에 시해당한 명성황후를 말함)의 민씨 가문은 1천여 개의 관직을 독식하고 있다.

양반은 많은 특권을 누리는 집단이다. 그들에겐 우선 모든 종류의 세금과 병무가 면제되고, 그 지체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주인의 허락 없이 양반집 마당에 들어서는 것마저도 죄로 다스려졌을 정도이다. ... 애초 양반 증서에 명시되어 있던 항목은 나라에 봉사하는 모든 관리들에게는 양반의 지위를 인정한다는 것, 모든 양반은 관직에 임할 의무가 있다는 것으로 오직 한국과 러시아에만 해당 되는 조항들이다.1)

이어서 저자는 주석을 달았다.

“이와 관련된 법령들과 승급제도는 피터 대제와 예카테리나 2세 시대의 법령 및 관직표와 매우 흡사하다.”(책, p 295-298)

글은 이어진다.

“몇 세대에 걸쳐 비록 말직일지언정 관직에 오르지 않은 가문은 양반으로서의 지위와 특권을 잃게 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료와 양반은 하나의 계급으로 통합되었고, 양반은 도시로 이주해가면서 자신들의 땅을 팔아버리거나 농민들에게 장기간 임대했다. 그런 식으로 세금을 내는 피지배 노동자와 세금을 징수하는 지배관리자의 두 불평등한 계급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중간계급(중인)은 아무런 세력도 없는 소수층에 불과했다. 그들은 대대로 특정한 기술이나 수공업에 종사해 온 사람들로 의사, 점성술사, 화가, 산관(算官) 등이 그에 속했다. 지방의 말단 관리와 서기, 비서, 공문서 관리자도 역시 같은 계급이었다.”

저자의 조선의 신분에 대한 이해는 정말 해박하다.

한편, 저자는 관료주의에 대하여 기술한다.

저자는 임진왜란 때 중국에서 받아들인 잘못된 관료주의가 한국을 극도로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언급한다.

“일반 민중과는 소통이 완전히 절연된 채, 관직 이외에 다른 직업이나 삶의 수단이 전혀 없었던 양반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관직과 봉급을 늘리는데 주력했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로 인해 벌어진 가문간의 세력다툼으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설사 정직한 사람도 친인척의 권력 남용 앞에서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관리들끼리 문중끼리 똘똘 뭉쳐 서로의 죄를 은폐해주는 식의 강한 연대의식이 한국만큼 확연하게 드러나는 나라도 그 어디도 없을 것이다.”

이어서 혈연주의와 한탕주의에 대하여도 언급한다.

“한국 풍습에 따르면, 관직을 획득한 양반은 부모, 형제뿐만 아니라 친척과 먼 일가도 부양해야 한다. 친척들의 온갖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니 뇌물과 부당한 세금을 거두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신참 관리는 공부하는 동안에 부채가 쌓였고, 상관에게 돈을 바쳐야 승진도 한다. 이러니 돈은 계속 들어간다. 이쯤 되면 관리들이 한탕주의에 급급한 것도 이해가 간다.”

<참고문헌>

o 세로셰프스키 지음·김진영 외 4명 옮김, 코레야 1903년 가을, 개마고원, 2006, p 295-301

오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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