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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7 12:20 (월)
[김세곤의 역사칼럼]외국인이 본 한말(31)
[김세곤의 역사칼럼]외국인이 본 한말(31)
  •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nexus386@
  • 승인 2021.03.17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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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야 1903년 가을(6)-만성적 병폐의 화신, 양반과 관리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폴란드인 세로체프스키(1858~1945)의 저서 『코레야 1903년 가을』의 19장 ‘사회는 욕창 앓는 몸’을 읽는다.

“노비보다는 한 단계 위이면서 자유인 신분인 천민(賤民)계급이 있다.

이들은 형벌집행자(망나니), 유랑 배우, 백정(도축업자), 갓쟁이 혹은 짐승 가죽 무두질쟁이, 무당, 기생, 갖바치(가죽신 제조자) 등 일곱 부류이다. 이 계층에 속하는 자들은 비록 자유인이지만 실생활에서 천민(賤民) 취급을 받았다.

한편 농민(‘상놈’)은 백성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들은 여전히 관리들로부터 착취를 당하고, 터무니없는 세금을 내고, 셀 수 없이 많은 잡역과 노동과 병무를 수행하면서 지주들의 온갖 어리석은 변덕마저 채워주어야 한다. 한국의 정부와 지배계급은 마치 농민들의 끝없는 인내심을 시험 하듯, 더없이 다양하고 더없이 어리석고 더없이 끔찍한 정책들, 그리고 사소한 일상적 관습에서까지의 온갖 규제들을 고문처럼 끝없이 가하며 그들을 유린해왔다. 혹 약간의 저항이라도 한다거나 반항의 작은 기미라도 보일라치면, 피가 철철 흐를 정도로 가혹한 매질을 하고 완전히 짓밟아 버린다.

한국법에 의하면 ‘반란죄’에는 황제의 명을 어기는 것뿐만 아니라 지방권력에 대한 불복, 심지어 가벼운 반대마저도 모두 포함되며, 처벌은 사형·무기·유형, 재산 몰수 등 중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큰 폭동들이 종종 일어났었고, 매번 아주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 물론 한국인의 인내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그런 폭동이 빈번했던 것은 아니다.

한편 한국 농민들의 무지몽매함과 미신적인 측면은 농민운동의 조직과 향방에서 대개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정부로서는 편의에 따라 농민운동의 방향을 기독교인, 외국인, 일본인, 혹은 그 밖의 다른 ‘오랜 전통의 파괴자’에게로 돌리는 것이 용이했고, 그래서 집단적 배외주의(排外主義)의 난리가 일어나는 사이 정작 진짜 억압자나 양반이나 관리들은 용케 몸을 숨길 수가 있었다.”

세로체프스키의 눈은 예리하다. 갑오혁명 농민들은 일본군에게 희생을 당했다. 정작 문제를 일으킨 정부와 탐관오리는 용케 빠져나갔다.

이어서 ‘만성적 병폐의 화신, 양반과 관리’ 항목을 읽는다.

“1894년의 법령(갑오개혁을 말함)은 노비제를 폐지하고 양반과 관리들의 특권을 없애면서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함을 선포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일반 민중의 몫으로 돌아온 건 단지 갓이나 망선, 넓은 소매의 도포를 입을 수 있는 특혜에 불과했던 것이다.

다른 것들은 하나도 달라진 바 없고, 양반과 관리들 역시 예전과 다름없이 민중을 쥐어짜며 착취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민중 측에서도 저항의 움직임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순한 민족적 성격에 걸맞게 수동적이며, 그나마도 권력남용이 아주 심할 때만 있는 경우이다.”

세로체프스키는 형식적으로는 양반과 관리의 특권이 없어졌지만, 실제로는 특권이 그대로 남아 있고 민중 착취도 여전함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글은 이어진다.

“한국에는 ‘계’라고 불리는 조합이 여러 종류 있는데, 생산계, 소비계, 상호적금 및 대출계 등이 그것이다. 또한 거의 모든 수공업과 가내 생산조직은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집권자가 심각하게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나치게 압력을 가해오면, 피해를 입은 조합은 파업을 일으키기도 한다.

해당 지역에서 보부상이 사라지고, 상인은 좌판을 걷어치우고, 운송꾼들은 물건 실어나르기를 거부하며, 장의업자들은 장례 치르기를 중단하는 식이다. 그렇게 해서 불만이 커질 대로 커지면, 정부는 보통 양보를 하여 문제가 되었던 시책을 폐지하거나 해당 관료를 잠시 다른 곳으로 전근 보낸다.

그러나 한국 민중은 또 그러한 정치적 무력함 앞에서는 오히려 약해져 버려, 자신들이 일궈낸 승리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한다. 얼마 있다가는 곧 모든 것이 이전대로 돌아와 있기 마련이고, 쫓아 보냈던 악덕 관리들마저 다시 복귀해 버리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권력남용은 지속되고, 결국 또 다른 분출이 터져 나올 때 까지 계속 증대되는 식이다.”

복직한 탐관오리의 대명사는 단연 1894년 1월에 고부농민봉기를 야기시킨 고부군수 조병갑(1844~1911)이다. 조병갑은 1894년 5월에 고금도로 유배 가서 1년 2개월간 유배 살다가, 1895년 7월에 고종의 대사령(大赦令)으로 민영준·조병식 등 279명과 함께 사면되었다. 그리고 1898년 1월에 법부 민사국장, 5월에 고등재판소 판사를 겸임하여 동학교주 최시형(1827-1898년 6월2일) 재판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o세로셰프스키 지음· 김진영 외 4명 옮김, 코레야 1903년 가을, 개마고원, 2006, p 285-312)

오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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