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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3 02:45 (목)
[김세곤의 역사칼럼]외국인이 본 한말(30)
[김세곤의 역사칼럼]외국인이 본 한말(30)
  •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nexus386@
  • 승인 2021.03.16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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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야 1903년 가을(5)-사회는 ‘욕창 앓는 몸’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폴란드계 러시아인 세로체프스키(1858~1945)의 저서 『코레야 1903년 가을』을 읽는다. ‘19장 사회는 욕창 앓는 몸’을 정독(精讀)한다.

“그리피스(‘은자의 나라 한국(1882년)’ 저자)의 말대로라면, 한민족의 기원은 아무르족과 중국 이주민들의 결합에서 시작되었다. 헐버트(미국 선교사이자 고종의 밀사, ‘대한제국 멸망사(1906년)’ 저자)에 의하면 남쪽 지역 사람들은 말라이 족에서 왔다고 한다. 언어적으로는 인도 남방 민족어인 드라비다어와 가깝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자료가 아직 충분하지 않아서 한국 인종의 특징이나 유형을 밝히는 일은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 ...

전반적으로 볼 때 한국인은 다른 사람을 상대하면서 일본인보다 덜 문화적이고, 교양이나 예절도 중국인에 비해 떨어진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선량한 온순함과 생활의 올바름에서 유럽인을 능가한다. 인내와 관용, 그리고 예절은 특히나 높이 평가되는 한국인의 미덕인 반면, 오랜 압제와 가혹한 박해의 결과인 듯 공정하다거나 정직하다거나 양심적인 면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세로체프스키가 언급한 한국인의 부정적인 면 ‘공정하다거나 정직하다거나 양심적인 면은 찾아보기가 힘들다.’를 읽으면서, 지금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LH투기 사태’가 생각난다. 가장 정직하고 양심적이어야 하며, 부패방지법의 받은 공직자가 이렇게 부패했다니. 뿌리 깊은 부패가 있었다니.

하기야 이런 부패자가 어찌 LH직원 뿐인가? 요즘 언론에는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공무원 등도 부동산 투기를 했다고 보도되고 있다.

세로체프스키는 19장에서 「신분제도, 노비와 농민, 만성적 병폐의 화신-양반과 관리, 관료주의 · 혈연주의 · 한탕주의, 강탈자와 피강탈자, 강도 납신다!, 정신적 ‘머구리’들」에 대하여 차례로 서술한다.(세로셰프스키 지음·김진영 외 4명 옮김, 코레야 1903년 가을, 개마고원, 2006, p 285-312)

먼저 신분제도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에는 신분 구분이 있어 왔다. 여행자들의 공통된 평에 따르면, 한국의 노비제도는 그다지 참혹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분제 철폐령이 내려진 1894년 당시 한국에는 세습귀족, 소(小) 귀족(시골 양반), 중인, 농민, 노비의 다섯 계급이 존재하고 있었다. 노비제도는 일본의 압력으로 1894년에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실제로는 오늘날까지 존재하고 있다.

1897년에는 독립협회가 노비문제를 공개토론의 쟁점으로 삼기도 했는데, 그때 독립협회 부회장이었던 양반 출신의 이완용(매국노 이완용임. 당시 이완용은 친미파로 독립협회 활동을 했다.)은 자신의 노비 30명을 해방시키고 노비문서까지 불태워버린 후 토론에 임하여 노비제의 폐지를 열심히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자 편에서는 노비제도란 하인제도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양반은 하인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고 강력히 반박했다.”(원주: Korean Repository 1897년, P.11)

1897년 7월에 독립협회가 창립했다. 회장은 안경수, 부회장은 이완용, 서기는 윤치호·이상재였고 고문은 미국인 국적을 가진 서재필이었다.

독립협회는 독립문 건설에 착수했고 1897년 8월29일부터 1898년 12월13일까지 독립관에서 총 34회 토론회를 열었다.

제1회 토론회는 1897년 8월29일 오후 3시 독립관에서 70명의 회원이 참가했는데 주제는 ‘조선의 급선무는 인민의 교육’이었다. 토론회는 찬반미팅이었다. 각자 주장을 하고 방청객들도 자유발언이 허용되었다.

회원들은 처음에는 발언을 주저했지만 얼마 후에는 자기 주장을 조리 있게 하였다.

이후 토론회 참가자와 방청인은 계속 증가하여 1897년 11월1일에 열린 8회 ‘노비제도’ 토론회에는 5백 명이 참가하였다. 이날의 주제는 “동포 형제간에 남녀를 팔고 사고 하는 것이 의리상 맞는가?”였다.

그런데 이완용이 이날의 토론회에 참석하여 노비제 폐지 발언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저자는 1892년부터 발행된 잡지 Korean Repository 1897년에 수록되어 있다고 밝혔지만, 윤덕한이 지은 『이완용 평전(2012년)』에는 이 날의 토론회에 대하여 언급이 전혀 없다.

한편, 이완용은 1897년 7월에 학부대신이었는데, 9월1일에 평안남도 관찰사로 임명되었고, 1897년 12월6일에 비서원 경이 되었다.

따라서 이완용이 1897년 11월1일에 열린 토론회에 참가했는지는 의문이 간다. 아울러 그가 노비 30명을 해방시켰는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오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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