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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1 14:05 (화)
[김세곤의 역사칼럼]외국인이 본 한말(28)
[김세곤의 역사칼럼]외국인이 본 한말(28)
  •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nexus386@
  • 승인 2021.03.10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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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야 1903년 가을(3)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폴란드 출신 세로셰프스키는 대한제국을 한 달간 여행한 책 『코레야 1903년 가을』에서 ‘왕궁에 미신이 깊숙이 스며들었다.’고 적었다. 실제로 대한제국은 그랬다.

1884년 갑신정변 때 절명 직전의 민영익을 살려내 고종의 어의(御醫)가 되었고, 1885년 2월29일에 설립된 서양식 병원 제중원(濟衆院) 원장이 된 호레이스 알렌(1858~1932)은 한말 외교사의 산 증인이다.

알렌은 1887년 7월에 주미전권공사 박정양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 한국공사관에서 일했다. 1890년에 한국에 돌아온 알렌은 미국 공사관 서기관, 총영사, 대리 공사 등을 역임하고 1897년 7월에 전권공사가 되어 줄곧 근무하다가 1905년 3월29일에 해임되어 미국으로 돌아갔다.

알렌은 1904년 11월18일에 미 국무부에 아래와 같이 보고했다.

“고종은 병적으로 미신에 빠져 있으며, 1895년 갑오개혁 기간 중 궁중에서 쫓겨났던 무당들이 궁중의 모든 일에 영향력을 미치고 국고로 들어가야 할 세금까지 가로챘다. 고종은 전투가 일본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던 1904년 11월에도 러시아가 승리할 것이라는 무당들의 말들 듣고 안심했다는 것이다.”(구대열, 디모클레스의 칼 ? – 러일전쟁에 대한 한국의 인식과 대응, 정성화 외, 러일전쟁과 동북아의 변화, 선인, 2006, p 28)

고종의 미신사랑은 민왕후가 총애하는 무당을 진령군으로 봉한 일화로 잘 알려져 있지만, 민황후가 1895년에 시해된 지 10년이 다 되는데도 고종은 여전히 미신에 빠져 있었다.

두 사료가 알렌의 보고서를 뒷받침하고 있다. 먼저 1904년 5월27일의 윤치호 일기이다. 이 사료는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한국사료총서」에 수록되어 있다.

“5월 27일 간밤에 비.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황제는 궁궐을 짓느라 분주하다.(1904년 4월14일에 경운궁이 모두 불탔다- 필자 주)

무당과 점쟁이들이 있는 방 두 칸에서 시간을 보내는 황제, 난방을 한 곁방 밖으로 나와 한낮의 햇빛을 보거나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시간도 없는 황제, 권력이 일상이고 부패가 즐거움이고 음모가 인생인 황제. 이 황제는 이 저주받은 나라의 저주받은 백성들로부터 갈취한 몇백만 원의 돈을 궁궐을 짓는 데 낭비하고 있다.”

또 하나는 1904년 9월2일에 의정부 참정 신기선이 올린 상소이다. 이는 1904년 9월 2일 자 「고종실록」에 수록되어 있다.

“현재 온몸과 터럭들까지 다 병들어 단 한 점의 살점도 성한 것이 없이 만신창이가 된 것처럼 온갖 법이 문란해지고 모든 정사가 그르쳐졌습니다. 하나하나 두루 진찰해 보면 그 어떤 약도 효력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증세에 대한 처방을 가장 근원적인 데서 찾으면 두 가지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첫째, 대궐을 엄숙하고 맑게 하는 것입니다. ... 위에서 정사를 깨끗이 하여야 아래서 명령을 미덥게 여기고 온 나라가 임금을 천신처럼 떠받들게 되어 백성들이 크나큰 교화를 입게 되고 나라가 태산의 반석처럼 안정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찮고 간사한 무리들이 폐하의 곁에서 가까이 지내는가 하면 점쟁이나 허튼 술법을 하는 무리들이 대궐 안에 가득합니다.

대신은 폐하를 뵈올 길이 없고 하찮은 관리만 늘 폐하를 뵙게 됩니다. 정사를 보는 자리는 체모나 엄할 뿐 서리나 하인들이 직접 폐하의 분부를 듣습니다. 시골의 무뢰배들이 대궐의 섬돌에 꼬리를 물고 드나들며 항간의 무당 할미 따위들이 대궐에 마구 들어갑니다.

평소에 감히 보통 관리도 가까이하지 못하던 자들이 폐하의 앞을 난잡하게 마구 질러다닙니다. 이로 인하여 벼슬을 함부로 주고 이를 통해 청탁이 공공연히 벌어집니다. 굿판이 대궐에서 함부로 벌어지고 장수하기를 빌러 명산(名山)으로 가는 무리들이 길을 덮었습니다.”

신기선은 대궐에 점쟁이와 무당이 마구 드나들고 굿판이 벌어지고 청탁이 공공연히 벌어지는 세태를 꼬집는다.

“근원이 되는 곳이 이처럼 문란하기 때문에 자질구레한 일들에까지 폐하께서 나서게 되어 여러 신하들이 게을러지고, 공적인 도리가 시행되지 못해서 모든 정사가 다 그르쳐져서 나라가 나라 구실을 못하게 되고 외국인의 충고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폐하께서는 그래도 깨닫지 못합니까?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선뜻 마음을 돌려 신속히 조상들의 옛 가법대로 소인(小人)들을 멀리하고 어진 사대부들을 가까이하며 경관(警官)들에게 엄히 신칙(申飭)하여 필요 없이 대궐에 들어가는 것을 단속하여서 대궐을 엄숙하고 맑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고종의 비답(批答)이 걸작이다.

"정사의 요점을 깊이 터득한 것으로서 매우 극진하여 마음이 툭 트인다. 그러나 현재 시행하려면 역시 곤란한 점이 있으니 응당 잘 참작해서 돈독하게 도움을 줄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사직하겠다는 말을 거두고 즉시 일을 보도록 하라.”

점쟁이와 무당을 궁궐에서 내쫓는 데 무슨 곤란한 점이 있다는 것인가?

오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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