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레야 1903년 가을』을 계속 읽는다. 세로체프스키는 영국 언론인이 지적한 권력남용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시골에서 일어난 것이다.
첫 번째 사례는 서울에서 북쪽으로 120마일 떨어진 소흥이라는 마을에서 일어났다. 이 마을에서 5명의 관리가 5년 동안 백성들로부터 14,000달러의 세금을 갈취했다. 개혁이 선포되기 2년 전(1892년으로 추정됨) 주민들은 내무대신에게 민원을 냈고, 그들 5명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예전의 직책으로 복귀하였다.
관료들의 제 식구 감싸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자 마을 주민들이 분노하였다. 이들은 다시 감찰사가 주관하는 감찰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주민들의 민원이 정당하다고 판명한 감찰위원회는 5명의 관리에게 자신들이 착복한 14,000달러 중 일부분만을 반환하도록 조치했다. 그 결과 감찰사는 4천 달러를 국고에 돌렸고, 주민들에게는 1,800달러를 되돌려주었으며, ‘단 한 명의 어떤 사람’에게는 2,700달러를 받았다.
마을 주민들은 이 결정에 불만을 터트렸다. 이러자 감찰사는 반대하는 자들을 옥에 가두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주민 4명은 겨울 내내 감옥생활을 하였다.
두 번째 사례는 한 유생이 12년 전에 죽으면서 서원에 2에이커의 땅을 헌납했다. 기특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 서원은 유생이 죽은 후 5년 동안에 마을 주민들로부터 340에이커의 땅을 갈취했다. 한마디로 서원의 횡포였다.
한편, 땅 소유자들이 호소해도 관리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고, 결국은 개혁이 일어난 1894년에야 땅을 되돌려 받았다. 그러나 반동의 시기로 돌아온 현재, 서원은 이전의 내부대신이 내린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증거를 들이밀며 문제의 그 땅을 다시 횡령했다. 마을 주민들은 두 번이나 땅을 빼앗기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한편, 경찰과 법원도 권력남용이 심각했다. 신식 한국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법은 부자를 위해서만 존재하지요. 부자는 사람을 죽여도 벌을 받지 않습니다. 돈으로 무죄판결을 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죄가 없는 사람도 몸값을 치르지 못하면 사소한 트집으로 감옥에 갇혀 무고하게 벌을 받게 되지요”
영국 언론인은 이렇게 덧붙였다.
“관리들은 또한 왕권과 구습을 지키는데도 매우 철저하다. 왜냐하면 그 구실 아래 자신의 모든 불법행위를 정당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저자는 한국사회를 ‘욕창 앓는 몸’으로 비유한다.
“이런 체제로 인해 한국인의 삶에는 초상집 같은 무거운 분위기가 깔려 있나 보다. 모든 것이 억눌려 있어 옆나라 일본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이나 진취성을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인들은 사소한 변화에도 깜짝깜짝 놀라하고 사회는 마치 오래 앓아 욕창 생긴 몸처럼 조금만 바깥 바람만 쐬어도 바짝 움추러 든다. 사방에 불신과 의심이 만연해 있어 사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아주 폐쇄적이고 공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고의 폭은 사회 전체에 대한 넓은 성찰로 이어지지 못했고, 지식은 여전히 중국으로부터 전송되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고, 세계관 또한 전형적인 관료 선비의 메마른 유교적 기회주의 안에서 쪼그라들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폴란드인 작가가 본 한국 사회는 중병을 앓고 있었다.
<참고문헌>
o 세로셰프스키 지음·김진영 외 4명 옮김, 코레야 1903년 가을, 개마고원, 2006, p 301-312
오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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