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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2 13:20 (월)
[김세곤의 역사칼럼]외국인이 본 한말(26)
[김세곤의 역사칼럼]외국인이 본 한말(26)
  •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nexus386@
  • 승인 2021.03.07 1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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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야 1903년 가을(1)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폴란드계 러시아인 세로체프스키(1858∽1945)가 1903년 10월 한 달 동안 대한제국을 여행한 기록, 『코레야 1903년 가을(1905년 간행 폴란드어판 제목은 ‘한국, 극동의 열쇠’)』이란 책을 읽었다.

세로체프스키는 1902년에 러시아의 황실 지리학회 탐험대의 일원으로 아이누족 연구를 위해 일본 북부지역(홋카이도)로 떠났다. 이 탐험은 1903년까지 계속되었는데 탐원대원들은 페테르부르크를 떠나 시베리아와 중국 북동부를 거쳐 일본으로 들어가서 탐험 하였다.

탐험을 마친 세로체프스키는 일본을 떠나 1903년 10월10일에 부산에 도착하여 1개월간 한국을 여행하고 중국과 실론, 이집트를 거쳐 폴란드로 돌아갔다.

『코레야 1903년 가을』은 모두 21장으로 되어 있는데 4장 한국의 종교, 19장 사회는 욕창 앓는 몸, 20장 간추린 한국사, 21장 전쟁 전야의 서울 등은 러일전쟁 전야의 대한제국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먼저 ‘4장 한국의 종교’ 중 미신에 빠진 궁궐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남녀무속인, 점성술사, 예언자, 풍수가, 주술사, 마법사들은 지금도 한국에 사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은 심지어 왕궁에 들어가 자기 수입의 원천이 되는 낡은 관습과 신앙을 열성적으로 옹호한다. 또 정치에 개입하여 그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거나 적대적인 관료들과 대립하기도 한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백성들의 소요를 일으킬 만한 불씨를 온나라에 퍼뜨리기도 하는데, 이는 모든 개선과 진보적인 개혁에 적대적인 것으로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9년 전에 살해당한 민비(1861∽1895)는 모든 개혁을 열렬히 반대한 사람으로서, 그녀가 샤머니즘의 열렬한 옹호자이자 스스로 주술사와 무당과 판수(최고 무속인)를 곁에 두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그들의 영향력은 급속히 약화되었다.

그러나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어서 1904년에 서울을 점령한 일본인들이 제일 먼저 해야 했던 것은 왕궁에서 이 사기꾼들을 모두 몰아내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선포된 황제의 칙령은 이 사기꾼들을 ‘최근의 불행한 사태의 원천으로 지목하고 있다.(원주 「러시아 통보」 119호, 1904년)

일본인들과 친일파 한국인들, 그리고 정부의 개혁파는 예로부터 무속인들에 대해 특별한 반감을 품어 왔다. 궁정 소속의 한 관리는 한국의 황제가 올해에도 무속 제례를 위해 1만 한국달러(엔)를 소비했노라며 내게 한탄한 적이 있다. 관리는 내게 ‘그 돈을 차라리 학교에 쓰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라고 물었는데, 내가 그 의견에 동의하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 지음 · 김진영 외 4명 옮김, 코레야 1903년 가을, 개마고원, 2006, P 67)

민왕후(1897년에 명성황후로 추존)가 미신에 빠진 사실은 그녀의 종교가 ’무속 신앙‘인 점에서 잘 나타난다.(kbs 역사저널 그날 팀, 역사저널 그날 8 순조에서 순종까지, 민음사, p 85)

1910년에 나라가 망하자 다량의 아편을 먹고 순국한 조선의 마지막 선비 황현(1855∽1910)은 쓴 야사(野史) 『매천야록』에서 민왕후가 궁중에서 복을 비는 제사를 많이 벌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자(나중에 순종)가 1874년 2월에 탄생하면서 궁중에서는 복을 비는 제사를 많이 벌였는데, 팔도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지냈다. 임금도 마음대로 잔치를 베풀었으며, 하사한 상도 헤아릴 수 없었다. 하루에 천금씩 썼으니 내수사의 재정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호조나 선혜청에서 공금을 빌려 썼는데, 재정을 맡은 신하 가운데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따지는 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그리하여 대원군이 십 년간 모은 것을 일 년도 안 되어 모두 탕진했다. 이때부터 벼슬을 팔고 과거(科擧)를 파는 나쁜 정치가 잇달아 생겨났다.”(황현 지음·허경진 옮김, 『매천야록』, p 50, 54 『매천야록』은 국사편찬위원회 누리집에 원본과 번역본이 수록되어 있다.)

한편, 1898년 5월6일의 윤치호 일기에는 고종의 미신 사랑이 기록되어 있다.

“6일(금요일) 화창한 날씨.

거의 하루 종일 한세진의 집에서 지냈다. 한세진 씨는 전하(고종)의 어리석은 행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ʻ몇 년 전 무당들이 궁궐에서 득세할 때, 전하께서 무당 앞에 꿇어 엎드리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무당들은 저세상의 영혼들과 영매(靈媒)로서 행세했는데, 어느 날 밤 무당이 전하 머리 위에 참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춤을 추다가 ‘나는 태조 대왕이다! 네가 누구 때문에 위대해졌고, 왕실 재산을 갖게 되었느냐?’고 소리쳤습니다.

전하께서는 마치 그 무당이 태조대왕이신 양 그 앞에서 허리를 굽혀 빌었고, 상궁에게 태조께서 원하시는 바를 알아내라고 명하셨습니다.

물론 무당은 태조의 영혼이 원한다면서 기도와 제물을 바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제물이란 그 무당에게 바치는 돈과 비단이었지요.’”

윤치호는 일기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전하께서 여전히 이런 어리석은 일에 빠져 계시니 안타까울 따름이다.”(윤치호 일기는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 데이터베이스- 한국사료총서」에 영문일기가 번역되어 있다.)

오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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