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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6 12:00 (화)
김용균 이후 일상이 된 '후진국형' 산재사고…'충격요법' 재해법이 죽음의 고리 끊어낼까
김용균 이후 일상이 된 '후진국형' 산재사고…'충격요법' 재해법이 죽음의 고리 끊어낼까
  • 최주혁 기자 choijhuk@
  • 승인 2021.01.09 0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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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제정안 국회 통과…법인에도 50억원까지 벌금형
중대재해땐 기업사장 1년이상 징역 가능…5배 징벌적 손해배상도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등 예외 규정 많아 실효성 의문
경제계, 중대재해법 통과에 "참담·허탈하다"…보완 논의도 촉구
앞으로 노동자 1명 이상이 숨지는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기업 대표이사도 안전 조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징역 1년 이상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사진=연합 제공]
앞으로 노동자 1명 이상이 숨지는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기업 대표이사도 안전 조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징역 1년 이상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사진=연합 제공]

[오늘경제 = 최주혁 기자]

앞으로 노동자 1명 이상이 숨지는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기업 대표이사도 안전 조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징역 1년 이상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원청과 대기업이 사실상 '의사결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꼬리 자르기가 더 이상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는 지난 8일 본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중대 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이하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이 법은 공포 이후 1년이 지난 날부터 시행되는데, 앞으로 노동자의 억울한 사망을 기업이 '매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효과가 있을지 주목된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사망한 지 2년여 만에 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일종의 극약처방, 즉 '충격요법'에 가까운 중대재해법은 '외견상'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 경영 책임자, 법인 등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으로,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모델로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등 기존 법규로는 중대 재해가 아무리 발생해도 중간 관리자만 처벌할 뿐 '사업주 처벌'과는 거리가 멀었던 까닭에 '후진국형 대형 산재'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노동계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또한 법을 통해 '원청 경영진'에게도 책임을 지우는 1차적 시스템을 구축한 셈이다.

지난해 4월 무려 38명의 사망자를 낸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를 계기로 중대재해법 제정 여론이 급속히 확산했다. 

특히 '죽음의 사업장'으로 불리는 포스코 사태 이후 여야 정치권도 이에 동참했다. 포스코에선 최근 두 달 사이 포항과 광양 제철소에서 일하던 하청직원 등 5명이 목숨을 잃었다.

택배 노동자들이 연일 잇따른 과로사 죽음에 대해 '사회적 타살'과 '택배재벌의 살인'으로 규정하며 투쟁의 수위를 높이자, 여의도 정치권은 부랴부랴 "택배노동자의 죽음도 중대재해"라며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롯데택배를 '목표물'로 삼았다. 정의당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택배 기업의 책임자에게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제정안을 통해 시스템을 구축한 것과 관련, 산업재해 사망 사고 대부분이 중소 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현실을 법이 담지 못했다는 비판이 노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급기야 일각에선 법 자체가 대기업과 노동계 양쪽의 눈치를 본 '누더기법'이라며 사실상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나온다.

시작부터 노동계, 재계 양쪽의 반발을 사고 있는 이 법은 2018년 12월 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태안화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용균(당시 24세)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지면서 촉발됐다.

당시 홀로 일했던 김씨는 별다른 안전 장비도 없이 작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경찰 조사가 시작되고, 사고 책임자 11명이 검찰에 넘겨졌지만, 원·하청 대표이사들은 처벌에 대상에서 빠지면서 산재 사망사고를 막으려면 경영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태안화력에선 지난해 9월에도 협력업체와 계약한 화물차주가 갑자기 굴러떨어진 스크루에 깔려 숨졌고, 두 달 뒤 인천 영흥발전소에서 안전 장비 없이 일하던 하청업체 노동자가 또 숨지면서 '위험의 외주화'를 규탄하는 움직임이 거세졌다.

중대재해법상 중대 재해는 '중대 산업재해'와 '중대 시민재해'로 나뉘는데 중대 산재는 사망자가 1명 이상인 재해와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인 재해 등을 의미한다.

중대 산재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가 산재 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 등 법에 규정된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경영 책임자는 대표이사와 같이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나 안전 담당 이사 등을 가리킨다.

중대 산재가 발생하면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외에 양벌규정에 따라 법인이나 기관도 주의·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최대 50억원의 벌금형이 선고될 수 있다.

또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이 고의나 중대 과실로 중대 재해를 낸 경우 사업주와 법인 등은 손해액의 5배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한 것이다.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의 안전 조치 의무 대상에는 실질적 관리 아래에 있는 '하청 노동자'도 포함된다. 하청 노동자가 중대 재해를 당할 경우 원청 사업주 등도 처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대 시민재해는 공중 이용시설과 공중 교통수단 등의 관리 부실로 발생한 것으로, 사망자가 1명 이상인 재해와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인 재해 등을 의미한다.

중대 시민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가 안전 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중대 시민재해에도 양벌규정과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된다.

이 같은 중대재해법 제정으로 수익 창출에 혈안이 돼 '노동자의 죽음'을 당연시해왔던 사업주와 경영자에 대한 처벌은 외견상 현실화 됐지만, 입법 과정에서 처벌에 대한 예외가 무더기로 만들어져 현실에 접목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기업제정운동본부와 산재 유가족들은 8일 법안 통과 후 국회 정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는 중대재해법 제정의 정신"이라면서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로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죽음을 중대재해법 적용에서 제외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50인 미만 사업장에 법 적용을 유예한 것과 일터에서의 괴롭힘에 의한 죽음을 배제한 것, 책임 있는 발주처와 공무원을 처벌하는 조항을 삭제한 것 등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5인 미만 사업장을 중대 산업재해 처벌의 예외로 한 게 가장 큰 허점으로 꼽히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국내 5인 미만 사업장은 123만곳이고 종사자 수도 333만명에 달한다. 이들이 모두 중대재해법의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얘기다.

중대재해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공포 이후 3년 동안 유예기간을 부여했다. 소규모 사업장은 산재 예방 인프라를 갖추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문제는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산재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2019년 국내 제조업의 산재 사고 사망자 206명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164명(79.6%)에 달했다. 이 중 5인 미만 사업장도 42명(20.4%)이나 됐다.

중대재해법이 제정돼도 당분간 산업 현장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대 시민재해의 경우 소상공인 사업장, 교육시설, 바닥 면적 합계가 1천㎡(약 302평) 이상인 다중이용업소 등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대 재해에 대한 처벌 수위도 국회 심사 과정에서 대폭 낮아졌다.

당초 의원 발의안은 노동자 사망사고를 낸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에 대해 2년 이상의 징역이나 5억원 이상의 벌금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국회 심사 과정에서 징역형의 하한선을 1년으로 낮추고 벌금형은 하한선 대신 10억원의 상한선을 뒀다.

중대 재해를 낸 사업주와 법인 등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규모도 의원 발의안은 손해액의 5배를 하한선으로 규정했지만, 국회 심사를 거치면서 손해액의 5배가 상한선으로 바뀌었다.

중대 재해에 대한 처벌 대상인 경영 책임자에 안전 담당 이사를 포함한 법 규정도 허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대 재해를 낸 기업의 대표이사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부실한 관리·감독 등으로 중대 재해를 야기한 공무원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의원 발의안 조항도 국회 심사 과정에서 삭제됐다.

건설공사 발주자를 처벌 대상에 포함한 조항도 빠졌다. 건설 현장의 중대 재해는 발주자의 무리한 공기 단축 요구에 따른 경우가 많아 발주자도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노동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안전 조치 의무 위반 전력 등이 있는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가 중대 재해를 낸 경우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형법 체계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노사 모두 반발…산업 현장 안착 쉽지 않을 듯

중대재해법은 노사 양쪽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중대재해법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차별법'으로 규정하며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대다수의 중대 재해가 발생하는 작은 사업장의 현실을 무시한 법 제정"이라며 "법을 빠져나가기 위해 사업장을 쪼갠 '가짜 50인 미만,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속출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경제계의 극렬한 반대에도 지난해 '공정경제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에 이어 기업 부담 법안이 연이어 통과하자 재계는 유감을 드러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배포한 입장문에서 "강한 유감과 함께 향후 발생할 부작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국회와 정부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논의에 즉시 착수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법은 강화된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된 지 1년여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원인과 예방 방안에 대한 충분한 숙고 없이 전적으로 기업과 경영진에게만 책임과 처벌을 지운다"면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경영 책임자와 원청에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는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고 사고 발생 시 기계적으로 중한 형벌을 부여하는 법률 제정에 대해 기업들은 공포감과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중대재해법을 서둘러 입법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이번 입법은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산재의 모든 책임을 기업에 지우고 과도한 형량을 부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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