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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1 15:50 (월)
[김세곤의 역사칼럼]외국인이 본 한말(2)
[김세곤의 역사칼럼]외국인이 본 한말(2)
  •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nexus386@
  • 승인 2020.12.15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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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숍 여사가 본 조선의 첫인상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비숍 여사가 지은 책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제1장은 ‘조선의 첫인상’이다. 그녀는 1894년 1월에 나가사키에서 부산에 처음 도착했다.

“나가사키에서 조선의 남단에 위치한 부산까지는 15시간이 걸린다.(중략) ‘그림자가 비치는 섬’이라는 뜻의 절영도는 높고 풀이 무성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그 섬에 저탄장과 검역병원을 설립했다. 부산에 닻을 내리며 만난 사람은 조선 사람이 아니라 일본 사람이었다. 점등하는 사람조차도 일본인이었다. 세관원은 영국인이었다. 그는 조선의 관세 세입의 관리를 돕도록 중국의 세관이 조선의 세관에 파견한 인물이었다.(비숍 지음·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집문당, p 13)

이윽고 비숍은 부산에서 본 조선 사람의 첫인상을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조선 사람은 색다른 인상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중국인이나 일본인과 닮지 않았다. 오히려 양자보다 더 멋있어 보이며 일본인보다 체격이 더 좋다. 비록 그들의 평균 신장이 겨우 5피트 4.5인치(158cm)이지만, 흰색 옷은 몸을 풍성하게 보이게 하고, 언제나 쓰고 있는 높은 왕관 장식의 모자는 키를 더 커 보이게 만든다.

사람들은 겨울옷을 입고 있는데, 소매가 있는 흰 면의 길고 품이 큰 겉옷, 거대한 바지, 그리고 버선은 모두 솜으로 채워졌다. 그들은 검은 모피의 가장자리에 장식을 달고 검은 비단에 솜을 넣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p 17)

이어서 그녀는 부산 장날을 구경했다.

“조선어를 거의 영어처럼 말하는 매력적인 영국인 우나가 부산도심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는 장날의 붐비는 군중 속을 평화롭게 걸어갔다. 나는 부산이 처참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나는 그것이 조선 마을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점을 알았다. 좁고 더러운 거리에는 진흙을 발라 창문도 없이 울타리를 세운 오두막집, 밀짚 지붕, 그리고 깊은 처마, 마당으로부터 2피트(61cm) 높이의 굴뚝이 솟아있고 가장 바깥에는 고체와 액체의 폐기물이 담겨있는 불규칙한 개천이 있다.

더러운 개와 반라이거나 전라(全裸)인 채 눈이 잘 보이지 않고 때가 많이 낀 어린애들이 두껍게 쌓인 먼지와 진흙 속에 뒹굴거나, 햇볕을 바라보며 헐떡거리거나 눈을 끔벅거리기도 하며, 심한 악취에도 아무렇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장날이 되면 이 불쾌한 것들이 많이 은폐된다. 좁고 먼지투성이고 굽은 길의 모든 거리를 따라 상품들은 마당의 멍석위에 널려져 있었고 더러운 흰 면을 입은 남자나 늙은 여자가 그것을 지키고 있다.(p 18)

며칠 후 비숍 여사는 부산에서 제물포 가는 배를 탔다. 부산에서 남해와 황해를 지나가는 3일간의 여정이었다.

“부산이 자리잡고 있는 남해는 황해와 너무도 확연히 구별될 만큼 달랐다. 황해에 있는 섬들은 거칠고 험상궂고 바위투성이의 갈색이며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다. 단조롭고도 견딜 수 없는 이틀 동안에 더 많은 섬과 흙탕물을 지나고, 강어귀와 거룻배를 지난 다음 3일째가 되는 오후에 우리를 태운 히고마루는 서울의 입구인 제물포에 정박했다.

사실 대다수의 정박지처럼 제물포도 항구라고 할 수 없었다. 낮의 대부분 동안에는 끈적끈적한 개펄이 널려있고 조수의 차이는 36피트나 되었다. 모래톱을 지나는 좁은 통로의 정박지에는 보통 크기의 배 5척을 수용할 수 있다.”(p 20-21)

여기에서 비숍은 조선 사람들의 집과 관아에 대하여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조선 사람들의 집은 언덕 밑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언덕을 오르면 자투리땅마다 채소를 심은 토담집이 늘어서 있고 지저분한 길목에는 몸이 더러운 아이들이 떼지어 앉아 그들의 무기력한 아버지를 본받을 방법을 찾고 있었다.

언덕꼭대기에는 관아가 있다. 형벌의 방법은 관아의 벼슬아치들이 죄인을 잔인하게 채찍질하고 죽도록 때리는 것이다. 죄인들의 괴로운 부르짖음이 영국 선교관과 인접한 방까지 들려온다.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거의 모든 관아가 악의 소굴로 되고 있다.”(위 책 p 24-25)

비숍 여사는 관아를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악의 소굴’이라고 했다. 벼슬아치들의 탐학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한편, 비숍 여사는 제물포 인구까지도 파악했다.

“제물포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897년 현재 4,357명이고, 조선인은 6,700명이고 그들 중 절반은 남자인데 항상 활동하고 있으며, 일부는 외국인 거류지에서 짐꾼으로 일하며 지게로 엄청난 무게의 짐을 나른다.”(p 24-25)

 

오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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