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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07:05 (화)
현종시대의 전염병과 재해(31)
현종시대의 전염병과 재해(31)
  •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nexus386@
  • 승인 2020.10.12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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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671년 5월16일에 함경도 각 고을에서 말과 소의 돌림병이 크게 번져서 개와 돼지까지도 전염되어 죽었다. 함흥에서는 천둥과 번개가 크게 쳐서 벼락에 맞아 죽은 사람이 있었다.(현종개수실록 1671년 5월16일)

5월17일에는 도성에 기근이 심하여 민호(民戶)의 대소에 따라 차등을 두어 곡식을 나누어 꾸어주었다. 강도(江都)·관서(關西)의 쌀과 좁쌀을 전후로 나누어 준 것이 26,500석이었다.(현종개수실록 1671년 5월17일)

5월19일에 사간원 대사간 남용익, 사간 이합, 정언 윤계 등이 아뢰었다.

“올해에 굶주리거나 병을 앓아 죽은 참상은 실로 만고에 없던 것인데, 양남(兩南 영남과 호남)에서 보고한 숫자는, 경상도는 굶주린 백성이 24만 2천 5백여 인이고 병으로 죽은 자가 5백 90인이었으며 전라도는 굶주린 백성이 21만 2천 3백여 인이고 병으로 죽은 자가 2천 80인이었습니다. 구휼소에 나아간 굶주린 사람의 숫자가 이처럼 많다면 죽은 자가 이것뿐 일리는 만무합니다. 그런데 감사가 수령의 보고만을 믿고 그대로 보고하였으니, 경상감사 민시중과 전라감사 오시수를 모두 무겁게 추고하고 각 고을의 사망자 숫자를 다시 조사해 아뢰게 하여 수령을 논죄할 바탕으로 삼으소서.”

이러자 현종이 따랐다.(현종개수실록 1671년 5월19일)

5월20일에 한성부에서 아뢰었다.

“쓰러져 있는 주검을 묻는 일에 대해 국가에서 신칙(申飭, 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함)을 엄명하게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마는, 어제 관아의 관원을 보내어 적간(摘奸, 죄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밝히기 위하여 캐어 살핌)하게 하였더니, 남부에 속한 경내에 쓰러져 있는 주검이 더욱 많아서 성안과 성 밖에 있는 것이 77구나 되었는데 혹 머리뼈만 남은 것도 있었습니다. 해당 부서의 관원이 즉시 묻지 않았으니 매우 놀랍습니다. 이들에게 무겁게 죄과(罪過)를 물으소서.”

이러자 현종은 관원들을 잡아다 추문하여 처벌하라고 명하였다.(현종개수실록 1671년 5월20일)

이때 내간(內間)의 궁인(宮人) 중에서 역질에 걸려 질병가(疾病家)에 내보냈던 자가 잇따라 죽었고, 도성의 사대부로서 전후로 죽은 자도 다수였으며, 심지어는 온 집안이 모두 전염되어 열 사람 가운데에서 한 사람도 낫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동·서 활인서(東西 活人署) 및 각 처의 사막(私幕)에서 병을 앓다가 죽은 자와 길에 쓰러진 주검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각부(各部)에서 모두 거두어 묻지 못하고 구덩이에 가져다 두는데, 동서교(東西郊) 10리 안에 쌓인 주검이 언덕을 이루었고, 빗물이 도랑에서 넘칠 때에는 주검이 잇따라 떠내려갔다. 도성에서 이처럼 사람이 죽는 참상은 예전에 없었다.(현종개수실록 1671년 5월20일)

5월24일에 진휼청이 백성의 진휼에 관해 아뢰었다.

“서울에서 구휼소를 폐쇄한 뒤에 의지할 데 없이 빌어먹는 무리에게는 각소(各所)에서 양식을 주기도 하고 죽을 먹이기도 하면서, 그 친족 및 데려다 기를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휼소를 없앤 지 꽤 오래되었는데도 굶주린 백성이 본토(本土)로 돌아가지 않고 항간에서 빌어먹다가 굶고 병을 앓아서 죽게 된 자가 자못 많습니다.

듣건대, 홍제원에는 아직도 병을 앓는 백성을 머물려 두고 먹이고 있으므로 또 다시 슬피 부르짖으며 살려 주기를 바라고 있는 수가 이미 2백명을 넘었습니다. 이제 구휼소를 없앴다 하여 일체 물리친다면 물러가도 돌아갈 곳이 없어서 반드시 다들 구덩이에 굴러 죽을 것이니 이들을 잘 처리하지 않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니 본청에서 세 곳에 남아 있는 굶주린 백성을 거두어 모은 다음 따로 강창(江倉)에 두고 죽을 먹이다가 다시 형편을 보아 파하여 보내겠습니다.”

이러자 현종이 윤허하였다.(현종개수실록 1671년 5월24일)

5월에 굶주리고 병을 앓아 죽은 사람이 서울은 3천 1백 20여 인이었고 팔도에서 보고한 것은 모두 1만 3천 4백 20여 인이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삼남(三南)이 더욱 심하였다.(현종개수실록 1671년 5월29일)

오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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