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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8 12:00 (수)
현종시대의 전염병과 재해(25)
현종시대의 전염병과 재해(25)
  •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nexus386@
  • 승인 2020.08.31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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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671년 3월11일에 원양도(原襄道 강원도) 원주에 큰 눈이 내렸는데 그 두께가 거의 두 치나 되어 산과 들이 모두 하얗게 변하였다.(현종개수실록 1671년 3월24일)

황해도도 3월 들어 잇따라 된서리가 내리고 11일에는 눈이 내려 산들이 다 희었고 하루 종일 녹지 않아 기장과 조가 모두 얼어 상하였다. 2월에는 비가 잇따라 내려 봄갈이의 때를 잃었는데, 3월에 이르러서 가뭄이 날로 심하고 사나운 바람이 땅을 휩쓸어 밀 보리가 점점 말라갔다.(현종개수실록 1671년 3월24일)

3월25일에 현종이 흥정당에 나아가 여러 신하와 함께 진휼에 대해 논의하였다.

우의정 홍중보가 아뢰었다.

“병조의 제정이 다 비어서 봉부동(封不動) 목면(木綿)을 쓰게 되었는데 남은 것이 많지 않으니, 참으로 걱정입니다.”

이어서 좌의정 허적이 진휼청으로 하여금 4월, 5월의 한 당번(當番)을 계산하여 지급하게 하기를 청하니 현종이 윤허하였다.

이윽고 사헌부 집의 이단석이 아뢰었다.

“진휼소(賑所)에서 굶주린 백성의 주검을 수레로 실어내는 일이 잇따라 보기에 참혹한데, 그 가운데는 혹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는데도 싸잡아 실어내는 일이 있습니다. 진휼청과 각부의 관리를 엄히 경계하여 이런 폐단이 없게 하소서.”

현종이 말했다.

“앞으로 이런 폐단이 다시 있으면 진휼청의 당상·낭청과 각부의 관리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각별히 엄하게 경계하라. 또한 죽은 사람을 묻을 때 주검을 염하여 깊이 묻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드러나고야 말 것이니 명심하라.”

이러자 허적이 아뢰었다.

“이미 진휼청에서 면포를 주어 몸을 가리고 단단히 묻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듣자니 곧 파내어 염한 것을 벗겨 간다니 참으로 매우 놀랍고 참혹합니다.”

우의정 홍중보도 아뢰었다.

“신이 지난번에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사람의 발에 줄을 묶어 놓은 것을 거리에서 보았습니다. 이것은 동네 사람이 나중에 끌어내기 위해 미리 만든 도구인데 매우 불쌍합니다.”

이러자 현종이 슬퍼하였다.

승지 성후설이, 한성부의 구휼소가 시어소(時御所)와 자못 가까운데 전염병의 기세가 더욱 성하다고 하여 옮겨 설치하게 하기를 청하였다.

이러자 현종이 말하였다.

“죽을 운반할 즈음에 반드시 끼니를 잃을 걱정이 있을 것인데, 굶주린 백성이 혹시 이 때문에 죽게 된다면 또한 매우 불쌍하다.”(현종개수실록 1671년 3월25일)

현종은 구휼소 이사를 반대한 것이다.

3월25일에 현종은 경상·원양(原襄 강원)·함경도에서 금년 상반기에 납부할 세금을 특별히 감면하였다.(현종개수실록 1671년 3월25일)

3월26일에 교리 신정·민종도, 부수찬 이합 등이 진휼하는 정사에 대해 극구 말하고 이어서 책례(冊禮) 때에 낭비를 줄이고 감옥에 지체되어 있는 죄수를 빨리 처결할 것 등을 아뢰었다.

이에 현종이 답하였다.

“국가가 불행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황급하기가 마치 강 가운데에서 노(櫓)를 잃어 어떻게 건너야 할지를 모르는 것과 같다. 아, 허물이 실로 내게 있다. 백성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음식을 대하여도 입맛이 없고 앉으나 누우나 편안하지 않다. 더구나 연산(連山)의 일은 말하기도 참혹하다. 교화가 행해지지 않는 것이 매우 부끄러워서 내 절박한 마음이 병중에 더욱 간절하다. 예를 행할 일이 있더라도 어찌 호화롭게 할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제 상차한 내용을 보건대, 경계한 것이 매우 절실하니, 가까이 두고 보며 경계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현종개수실록 1671년 3월26일)

3월27일에 사간원 정언 강석창이 백성 진휼에 관해 아뢰었다

“근일 도성 안에는 혹독한 전염병이 유행하여 전염되어 죽은 자가 날마다 잇따르고 있으며, 외부에서 모여든 굶주린 백성은 오로지 진휼의 죽을 먹기 위해 온 것인데 겨울부터 봄까지 뼈에 사무치도록 얼고 굶주린 데다가 밤낮으로 한데에 거처하다 보니 바람과 서리에 시달려서 조금만 건드려도 곧 넘어져 죽고 말므로 시체가 줄을 잇고 도랑이 다 찼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절로 마음이 놀라고 눈물이 글썽입니다. 해당 부처와 진휼청은 이러한 상황을 빨리 아뢰어야 할 것인데도 여전히 염두에 두지 아니하고 있으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한성부와 진휼청의 당상·낭청을 무겁게 추고하소서.

또 진휼소를 성문 밖의 적당한 곳으로 옮기고 그 가운데에서 병이 전염된 무리 또한 격리하여 거처하게 한 다음 각별하게 간호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조치하소서.“

이러자 현종이 따랐다.(현종개수실록 1671년 3월27일)

오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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